기후변화는 점점 더 구체적인 일상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폭염, 한파, 미세먼지, 침수, 가뭄 등 다양한 기후 재난은 사회 모든 계층에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집단은 바로 ‘기후 취약계층’입니다. 이들은 경제적 여건, 건강 상태, 주거 환경, 정보 접근성 등에서 이미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으며 기후 위기의 충격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누적적인 피해에 노출됩니다. 최근 들어 국내외에서 이러한 기후 취약계층을 정의하고 그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 논문과 통계 자료가 발표되고 있으며 정책 설계와 대응 전략 마련에도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후 취약계층을 다룬 주요 연구 결과와 국가 통계, 국제 보고서 등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이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국내 연구 및 보고서 분석
국내에서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서울연구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기후 취약계층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기후변화 적응 정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기후정책 예산 중에서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에 투입된 비중은 약 12.3%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계층을 위한 예산 치고는 매우 낮은 수치로 구조적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해당 보고서는 지자체마다 취약계층 대응 수준이 크게 달라 지역 간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며 기존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정량적 데이터 기반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기후복지 영역에서도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서울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폭염 취약계층 대응 정책 연구’ 보고서도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해당 보고서는 65세 이상 독거노인 및 쪽방촌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했으며 여름철 실내 온도가 30도 이상인 상태로 지속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42%에 달했습니다. 냉방기기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도 27.5%였고, 냉방기기가 있더라도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켜지 못한다는 사례가 다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무더위쉼터 확대, 쿨루프 도입, 미니 태양광 보급, 전기요금 감면제도의 자동 연계 등 현실적인 개선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특히 이 연구는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서 현장에서의 실제 불편함과 정책 사각지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책 설계에 실질적인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통계로 보는 기후 취약계층의 현실
통계청은 2022년 ‘기후위험 사회조사’를 시범적으로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계층별 기후 인식과 대응 역량을 파악했습니다. 전국 5,000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세 이상 고령자와 기초생활수급자 계층은 폭염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81.4%, 78.2%로 집계되었습니다. 반면, 기후 재난 시 대피 방법을 알고 있다는 비율은 장애인 가구에서 64.4%에 불과해 정보 접근성에 큰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전체 가구의 49.7%가 에너지비를 부담스럽다고 응답했으며 저소득층에서는 이 비율이 무려 78.9%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에너지 복지와 재난 대응 역량이 경제적 조건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에너지 바우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총 1,036,000세대가 신청했고, 이 중 약 82%만 실제로 해당 혜택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사용 사유로는 제도 자체를 몰랐다는 응답이 41%, 사용 방법을 몰랐다는 응답이 18%, 그리고 주소지 불일치나 계량기 정보 문제 등 기술적 요인도 14%에 달했습니다. 이는 제도 설계나 운영이 단순히 수급 여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접근하고 안내하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수혜율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해외 연구 및 국제 보고서 사례
해외에서도 기후 취약계층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IPCC 제6차 평가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후 위기 피해의 대부분이 저소득 국가, 해안 도시 거주자, 여성, 노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내에서도 소득 수준과 주거 조건에 따라 냉방시설, 공기정화기, 재난 대피 체계 등의 접근 격차가 존재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기후 예산의 최소 30% 이상은 기후 취약계층을 위해 배정되어야 한다는 정책 권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기후와 건강 보고서’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기후로 인해 사망하는 인구의 약 80%는 기초보건 서비스가 부족한 국가나 계층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 재난 이후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건강 문제가 급증할 것이며 이는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고령층, 이주민, 빈곤층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고서는 보건과 기후 적응 정책이 통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연구에서 제시된 정책 제안
이처럼 다수의 연구에서는 공통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후 취약계층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제도나 지원 정책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보의 단절은 곧 지원의 단절로 이어지며, 이는 제도의 존재 의미 자체를 퇴색시킵니다. 따라서 정책 설계 시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고,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오프라인 안내나 복지사 중심의 현장 중심 홍보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대응이 아닌 ‘예방’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재난 발생 후 일회성 물품 지원이나 긴급 조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미리 쿨루프를 설치하거나, 환기창을 보강하거나, 정전 대비용 배터리 시스템을 갖추는 등 사전 대응 중심의 기술과 제도 도입이 장기적으로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셋째, 지역 맞춤형 정책 설계가 필요합니다. 폭염에 취약한 도심 쪽방촌과 겨울 한파에 민감한 농촌 고령자 가구의 대응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표준화된 예산 배분보다는 지역 특성에 맞춘 유연한 정책 조정과 주민 참여 기반의 맞춤형 기획이 중요합니다. 최근 지방정부에서 주민 참여 예산제 등을 통해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연구는 좀 더 심층적이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일회성 설문이나 단기 조사 중심이었으나, 앞으로는 동일 가구를 장기적으로 추적하면서 기후 재난이 건강, 에너지 사용, 심리 상태 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연구 설계 시 취약계층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는 방식이 더욱 확대되어야 하며, 복지·환경·도시계획·보건 등 여러 분야를 통합하는 다학제형 연구가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기후 취약계층에 대한 연구와 통계는 정책과 예산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나침반입니다. 단순한 수치나 보고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 학계,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데이터 기반 정책을 실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지 환경만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한 진단과 분석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기후 대응 정책이 단지 형식적인 지원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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