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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취약계층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과 공간복지의 중요성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되어가는 지금, 폭염, 한파, 침수, 미세먼지 등 각종 기후 재난은 이제 특정 계절이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재난이 사회 모든 계층에 공평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 주거 취약계층 등 이른바 ‘기후 취약계층’은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더 큰 피해를 당하고, 회복에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낙후된 환경에 거주하며, 정보 접근성까지 낮다 보니, 일상 속에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공간’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단순한 복지나 재난 대응을 넘어선 새로운 해결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복지

바로 ‘커뮤니티 디자인’과 ‘공간복지’가 그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후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커뮤니티 기반 디자인 전략과 공간복지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후 취약계층에게 ‘공간’이 갖는 의미

기후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사람들의 삶에서 ‘공간’은 단순한 주거의 기능을 넘어 ‘생존의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서는 그늘 한 줄기, 바람이 통하는 쉼터 하나가 생명을 지켜주는 방어막이 되고, 한파 속에서는 따뜻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질병과 사고를 예방하는 핵심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후 취약계층은 주거 자체가 열악하거나, 일상에서 공공 공간에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지하나 옥탑방,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은 폭염이나 침수에 그대로 노출되며, 고령자나 장애인은 먼 거리의 복지관이나 쉼터로 이동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단순한 ‘개인 보호’나 일회성 지원으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 설계와 디자인, 즉 ‘공공 공간의 재구성’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공공 공간과 생활환경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 설계나 도시계획을 넘어서 사람 중심의 삶의 공간을 회복하는 방법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에서는 단열, 환기, 그늘, 이동 동선 등을 고려한 공간 설계가 재난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늘이 부족한 동네에 횡단보도 앞이나 버스정류장에 그늘막과 의자를 설치해 폭염 속에서 대기시간을 줄이거나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폭염 대응 쉼터’를 설치합니다. 또한 한파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공 임대주택 리모델링에 주민이 참여해 단열 효과 등 삶에 필요한 부분이 설계에 포함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커뮤니티 디자인은 지역의 맥락과 주민의 생활 특성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일방적 지원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후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복지

공간 복지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 제공을 넘어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보호를 실현하는 복지 방식입니다. 예컨대 무더위 속에 마실 수 있는 냉수가 제공되고, 앉을 의자가 있으며,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는 장소는 그 자체로 ‘복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공간 복지를 통해서 재난 정보, 건강 정보, 에너지 지원 정보 등을 전달할 수 있어 정보 소외계층에게 효과적입니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정서적 지지가 되고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됩니다. 냉난방이 가능한 공간에서 즉각적으로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어 건강 악화를 막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접근성 중심 설계를 통해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위치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공간복지는 기후 취약계층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도 복지시설과 재난 안전센터가 가까울수록 기후 재난 시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통계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국내외 커뮤니티 공간복지 사례

국내에서는 일부 지자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기후 대응형 커뮤니티 공간복지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성동구는 쪽방촌 밀집 지역에 여름철 ‘쿨링존’을 설치하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도록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이 공간에는 냉방기기, 냉음료, 의자, 의무 상담창구가 마련되어 있으며 누군가가 지속해서 공간을 돌보고 관리하면서 실질적인 쉼과 회복의 공간이자 주민들의 커뮤니티 기능까지 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영도구는 고령자가 많은 지역에 맞춰 ‘찾아가는 이동형 그늘 쉼터’를 운영하여 일정한 시간에 주민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에 버스 형태의 냉방 공간을 제공해 접근성 중심의 공간 복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도는 대형 재난 대피소와 별개로, 소규모 지역 커뮤니티 거점을 지정해 노약자나 이동이 불편한 주민들이 평소에 익숙한 공간에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서 주민과의 관계망 형성, 생활 밀착형 지원, 커뮤니티의 자율성 확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 복지 확대 방향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복지 확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첫째, 생활권 중심의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 많은 복지시설이나 쉼터가 상업지 중심에 위치해 있어 특히 고령자나 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반지하 주거 밀집 지역,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마을 등 실수요지 중심으로 공간을 배치해야 합니다. 둘째, 커뮤니티 운영 주체를 육성해야 합니다. 공간은 만들었지만 제대로 관리할 사람이 없어 기능이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주민,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등을 위한 공간 운영 교육 및 활동비 지원이 필요합니다. 셋째, 다기능 공간 설계가 필요합니다. 냉난방 제공뿐 아니라 의료·심리 상담, 정보제공, 식사 나눔 등 복합 기능을 가진 공간이어야 하며 평상시에는 카페, 마을도서관, 운동시설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야 지속성이 높아집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취약계층 맞춤 안내 시스템 도입이 필수입니다. QR코드 중심 정보 제공 대신 문자·전화·방문 등의 수단으로 위치 및 운영 정보를 알리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더 이상 자연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위협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일은 단순한 재난 대응을 넘어 사회 전반의 공간을 재설계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주민이 중심이 되는 참여 기반 공간 설계 방식이며 공간복지는 그 공간이 실제로 사람의 삶을 보호하고 돌보는 기능을 갖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는 더 이상 제도나 물질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구현되는 관계와 환경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는 거창한 기술이나 투자가 아닌 모두가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사회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