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의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복합적인 사회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위기는 폭염, 한파, 홍수, 가뭄 등의 재난을 일상화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재난들은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그 피해는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홍수와 가뭄, 그리고 똑같은 기온 상승과 재난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대체 공간이나 자원, 정보로 비교적 안전하게 생활을 이어가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생명과 생계의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기후 취약계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용어는 사회 전반에 아직 생소하게 느껴지고, 명확한 기준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부와 학계가 기후 취약계층을 정의하는 방식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는 기후 취약계층을 행정적 대상자로 접근하는 반면, 학계는 구조적 불평등과 환경 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의한다. 이에 따라 정책 대상에서 누락되는 실제 취약계층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형식적인 기준만으로 형평성 논란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 취약계층이라는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하는 실무적 기준과 학계가 제시하는 다차원적 기준의 차이를 살펴보고, 그 차이가 우리 사회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기후취약계층의 정의: 공통 개념
기후 취약계층이라는 용어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사람들’을 뜻하지만, 그 안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후 취약계층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춘 사람들로 정의된다. 첫째, 기후재난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둘째, 그 재난에 대한 감수성이 크다는 것. 셋째, 재난 이후의 대응이나 회복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국제기구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제시한 기후 취약성 평가 기준이기도 하다.
정부나 학계 모두 이 틀을 기본으로 기후 취약계층을 바라보지만, 각자가 이를 적용하고 해석하는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정부는 실질적 정책 집행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후 취약계층을 행정적으로 정의하고, 학계는 사회구조, 제도, 심리, 문화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노출성은 단순히 지역적인 요소만으로 판단되기보다는 직업, 활동 패턴, 주거 형태까지 고려되어야 하고, 감수성 역시 연령만 아니라 건강 상태, 사회적 지원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분류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기관은 현실적인 방식으로 기준을 단순화하거나 범위를 설정하게 된다.
정부가 보는 기후 취약계층의 기준과 특징
정부는 기후 취약계층을 정책 대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행정 처리의 효율성과 통계 기반의 객관성을 우선한다. 즉, ‘어떤 국민에게 어떤 정책적 지원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후 취약계층을 측정할 수 있고 구분 가능한 집단으로 분류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보건복지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에서 다양한 정책을 수행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독거노인, 장애인, 에너지 빈곤층 등을 기후 취약계층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부와 보건복지부는 ‘에너지 취약계층’이나 ‘폭염 취약계층’이라는 이름으로 정책 대상을 정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무더위쉼터 운영, 쿨링용품 지원, 에어컨 전기료 지원 등의 정책이 진행되며, 겨울철에는 난방비 바우처나 보일러 점검 지원, 건강관리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정부는 소득, 연령, 건강상태, 장애 등록 여부 등 이미 존재하는 행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상자를 분류하고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방식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된 국민에 대해 예산을 배정하고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대상이 명확하고 집행이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지, 단점도 뚜렷하다. 첫째, 실제 피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놓칠 수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예컨대, 중위소득 60%를 초과한 1인 가구 고령자는 실제로 매우 취약한 상황에 있을 수 있지만, 행정 기준에서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또한 이주민, 불법 거주자, 임시 거처에 있는 재난피해자 등은 제도권 밖에 있기 때문에 지원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행정적 기준이 고정되어 있어 실시간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갑자기 폭염경보가 잦아진 지역이 되었지만, 고정된 기준으로 행정적 지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정부는 형평성과 투명성이라는 행정 원칙하에 기준을 세우지만, 이 기준이 실제 현실의 복잡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은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학계에서 바라보는 기후 취약계층의 다차원적 기준
반면 학계는 기후 취약계층을 보다 포괄적이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학자들은 단순히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경제적 지표나 행정상 분류 기준만이 아니라, 기후 피해를 당할 가능성과 그 복구 능력 사이의 격차에 주목한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사회 구조적 요인, 주관적 인식, 지역적 불균형 등을 함께 고려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소득 수준의 두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은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단절된 관계 속에 있다면, 후자의 취약성이 더 높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학계는 정성적 데이터, 즉 사람들의 행동, 인식, 심리적 불안감까지 반영하려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기후 취약계층에 ‘정보 접근 취약자’와 ‘기후불안 경험자’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지고 있다. 폭염이 잦은 도시 지역에 살면서도 기후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노년층, 기후재난 경험으로 외상후 스트레스(PTSD)를 겪는 재난 피해자, 기후 불안증을 겪는 청소년 등은 기존 정부 분류에서는 빠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분명한 취약계층으로 간주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기후 취약계층을 '기후위기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가 제약된 사람들' 로 정의하기도 한다.
결국 학계는 기후 취약계층이라는 개념을 통해 ‘누가 기후위기 속에서 더 고립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려 하며, 이를 통해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기후복지 체계 수립에 기여할 새로운 복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 취약계층 기준의 차이가 불러오는 정책적 함의
정부와 학계의 기후취약계층 기준 차이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실제 정책 설계와 실행에 있어 포용성의 차이를 낳는다.
정부가 정한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제도 바깥에 머물게 된다. 반면 학계 기준이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면, 행정적으로 집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간극은 결국 기후복지의 실효성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피해자는 더 다양해지고, 피해 유형도 복합적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정부와 학계가 서로의 기준을 이해하고,
보다 실질적이고 융합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학계와 협업하여 기후위기 대응 통합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고위험 지역과 취약계층 선별 방식을 개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천시는 ‘기후복지 조례’를 제정하고, 학계와 협력하여 ‘기후 취약지수’를 지역별로 분석해 정책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있으며, 서울시는 고령자 대상 맞춤형 기후 돌봄 프로그램, 기후 안심 마을과 같은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부와 학계가 함께 데이터를 기반으로 협력하여 보다 정교하고 공정한 정책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기존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드러낸다.
따라서, 앞으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기후 취약계층에 대한 다차원적 정의와 실질적 평가기준이 정립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에너지 복지, 재난 대응, 건강 돌봄, 심리치료까지 통합하는 종합적 정책 모델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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