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폭염, 한파, 홍수, 가뭄 등과 같은 극단적인 기후현상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그 강도와 피해 범위는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이 동일한 피해를 겪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냉난방이 가능한 안전한 주택에서 위기를 견디지만, 또 어떤 이들은 에어컨이나 보일러를 이용 할 에너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기후재난에 취약한 구조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기후 취약계층’이라 부른다.
기후 취약계층은 단순히 저소득층이나 고령자에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들은 기후재난에 더 자주, 더 심하게 노출되며, 피해를 당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능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특정한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를 파악하는 것은 기후복지 정책 설계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기후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7가지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왜 이들에게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기후 취약계층은 에너지 접근성이 낮다
기후 취약계층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에너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폭염이나 한파가 닥쳤을 때 실내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냉난방 기기 사용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많은 기후 취약계층은 에어컨이나 보일러와 같은 기기를 갖고 있지 않거나, 있어도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에너지 접근성 부족은 생리적 위험으로 직결된다. 예를 들어 여름철 폭염 속에서 냉방 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열사병, 열부종 등의 온열질환, 겨울철 한파 속에서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 사는 사람은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정부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통해 일부 계층을 지원하고 있지만, 대상 선정 기준이 까다롭고 신청 절차가 복잡해 실질적인 효과는 제한적이다. 에너지는 단순한 편의가 아닌 기본 생존 수단이며, 기후 취약계층이 겪는 가장 심각한 현실 중 하나다.
기후 취약계층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거주한다
기후 취약계층은 물리적으로 기후재난에 취약한 주거 환경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반지하, 쪽방, 고시원, 낡은 단독주택, 비닐하우스형 임시 거주 공간 등이 있다. 이들 주거지는 단열이나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며, 폭염 시 온도 상승이 심하고, 한파 시 실내 온도 유지가 어렵다. 또한 이러한 공간은 홍수나 태풍 시 침수 가능성이 높고, 지진이나 강풍에도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다. 특히 노후 건축물은 전기 설비나 하수 시설이 불안정해 화재나 감염병 확산 위험도 높다. 주거는 기후에 대응하는 첫 번째 방어선이지만, 기후 취약계층은 이 방어선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열악한 주거 조건은 이들이 기후 위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기후 취약계층은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
기후 취약계층은 종종 주변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독거노인, 고립된 장애인,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주노동자, 노숙인 등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고, 재난 발생 시 외부와의 연결이 단절되기 쉽다. 사회적 고립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폭염 경보나 재난 안내가 나와도 이를 알려줄 사람이 없고, 무더위쉼터나 대피소로 이동할 수 있는 정보와 체력이 부족하다. 특히 고립된 상태에서는 응급 상황 발생 시 구조 요청도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인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 취약계층은 정보 접근성과 디지털 격차 문제를 겪는다
기후재난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디지털로 전달된다. 기상청 알림, 재난 문자, 무더위쉼터 위치 등은 스마트폰, 인터넷, SNS 등을 통해 공지되지만, 기후 취약계층은 이런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에서는 재난 시 긴급 문자를 보내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무의미하다. 디지털 취약층으로 예를 들면, 고령자, 외국인, 정보기기 미보유자는 단순한 기술 부족 아니라, 언어 문제나 정보 해석 능력 부족도 겪는다. 또한 일부는 인터넷 요금 부담으로 인해 스마트폰을 해지하거나, 오래된 휴대전화를 사용해 문자조차 수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위험 상황에서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조차 모른 채 고립될 위험에 놓인다. 이처럼 기후 취약계층은 단순히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보와 사회적 연결망에서도 소외된다는 공통적 특징을 가진다.
기후 취약계층은 건강상 취약성을 동반하고 있다
기후 취약계층은 대부분 신체적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호흡기 질환, 류마티스, 만성피로, 우울증 등 다양한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기온 변화나 습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심장질환자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심정지를 겪을 수 있으며, 호흡기 환자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기 쉽다. 또한 병원을 자주 다녀야 하지만, 기후재난 상황에서는 이동이 어렵고, 의료 접근이 차단되기도 한다. 기후 취약계층의 건강 상태는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방적 조치와 꾸준한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후 취약계층은 심리적 스트레스와 기후불안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기후재난은 단지 물리적 피해만 남기지 않는다. 반복적인 재난 경험은 심리적인 외상, 즉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기후 취약계층은 매년 여름마다 폭염에 고통받고, 겨울마다 한파로 병원을 찾는 경험을 반복하며 ‘다음은 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자신이 대응할 수 없다는 무력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 반복되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이들에게 기후 불안(eco-anxiety)과 기후 외상(climate trauma)을 동시에 유발한다. 특히 기후 불안(Eco-anxiety)은 고령자, 독거인, 저소득층 사이에서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최근에는 ‘기후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연구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는 재난 이후의 심리적 후유증도 하나의 기후 피해로 간주하고 있다. 기후로 인한 외상은 심각한 우울장애나 불면증, 사회적 위축을 일으키기도 하며, 이런 심리적 스트레스는 다시 건강 취약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기후 취약계층은 단지 ‘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다양한 건강 문제와 심리적 불안 요소를 내포한 상태에서 기후 위기라는 추가적인 압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기후 취약계층은 제도 밖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특징은 기후 취약계층의 상당수가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위소득 61% 가구, 이주노동자, 주소 미등록 거주자, 고시원 거주자는 대부분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원 기준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서류나 신청 절차의 복잡함 때문에 지원 자체를 포기하거나, 자신이 대상자임을 인지하지 못해 정책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결국 기후 취약계층은 실제로 가장 큰 위험에 놓여 있음에도,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중의 불평등을 겪는다. 이러한 정책적 누락은 국가의 기후복지 체계가 아직 충분히 정교하지 않음을 반증하며, 기후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기준만이 아니라, 이들 내부의 다양한 공통된 구조적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기후복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앞으로는 ‘누가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가’를 식별하는 것이 기후 대응의 핵심이며, 이 글에서 제시한 7가지 특징은 그러한 식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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