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취약계층

기후 취약계층 정책의 맹점: 제도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theokh0918 2025. 6. 30. 09:12

기후변화는 점차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폭염, 한파, 홍수, 미세먼지와 같은 기후재난은 더 이상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위험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의 맹점

특히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이른바 ‘기후 취약계층’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집단입니다. 이를 인식한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지원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법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층은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 방치되고 있습니다. 주소가 없거나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들, 복지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비공식 노동자들,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후 취약계층 정책의 사각지대를 구체적으로 짚고, 그들이 왜 제도 밖에 머물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도적 보호가 닿지 않는 기후 취약계층이 존재

정부는 폭염, 한파, 미세먼지 등의 기후 현상에 대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에너지 바우처, 무더위쉼터 운영, 냉·난방용품 지원 등이 있으며, 주거환경 개선과 재난 대비 교육도 일부 진행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대부분 ‘등록된’ 취약계층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소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노숙인 같은 비등록 거주자, 이주노동자 및 불법 체류 외국인, 다문화가정 중 무국적 또는 서류 미비자, 비공식 노동자 및 일용직 노동자, 디지털 문맹으로 정보 접근이 어려운 고령자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이들은 제도적 취약계층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행정 데이터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지원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의 문턱

기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정책은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대상자가 직접 신청하고 자격을 입증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절차는 오히려 장벽으로 작용해 기후 취약계층이 정책의 혜택 받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신청이 어려운 이유는 첫 번째 정보 부족으로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행정 문서 부재입니다. 주민등록증, 주소지, 통장 등의 서류가 없으면 신청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세 번째는 디지털 문맹으로 온라인 신청이 기본화된 구조에서 고령자나 문자 해독이 어려운 사람들은 처음부터 배제됩니다. 마지막은 복지제도에 대한 불신과 낙인감입니다. 과거의 복지 경험에서 받은 불신과 낙인감으로 인해 스스로 지원을 회피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결국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일수록, 제도의 도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역설이 발생하게 됩니다.

행정 편의 중심으로 설계된 기후 취약계층 정책 

정책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지만 현실보다는 행정 시스템의 편의성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제공한 예산과 지침에 따라 정형화된 방식으로 지원 사업을 집행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형화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노숙인 보호소에 입소하지 않은 노숙인은 무더위 쉼터 이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다수의 노숙인은 보호소에 대한 정보도 없으며 이동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주거용 건물이 아닌 시설에서 거주 중인 사람은 에너지 지원에서 누락됩니다. 하지만 기후 취약계층의 대다수가 낙후된 주거환경에서 거주하고 있어 제도권 밖에 있는 현실입니다. 외국인 등록이 되지 않은 노동자는 보건소의 기후 질환 예방 프로그램에서 배제됩니다. 이러한 정책 구조는 취약계층을 ‘데이터로 존재하는 사람’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기 어렵습니다.

사례로 보는 제도 밖에 기후 취약계층

첫 번째 사례는 쪽방촌에 거주하는 비등록 노동자입니다. 서울의 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외국인 일용노동자는 폭염 경보가 내려진 날에도 무더위쉼터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입장이 거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노동자는 에너지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쪽방 안에서 단순 선풍기로 견디며 온열질환에 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주거 미등록 노인이 겨울철 사망한 사례입니다. 경기도 외곽에 거주하던 75세 독거노인은 주민등록 주소지가 없었고, 복지 지원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한파 경보가 이어지던 어느 날, 보일러는 물론 전기장판 하나 없이 냉기로 가득 찬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지자체는 해당 인물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단순한 행정 누락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배제된 현실을 드러냅니다.

기후 취약계층 정책의 맹점을 메우기 위한 과제

기후 취약계층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의 맹점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등록 중심 정책’에서 ‘현장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서류 중심,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를 넘어서 지역 복지사나 생활지원사, NGO 단체 등이 직접 기후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접근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유연한 자격 기준 도입해야 합니다.

기존의 소득, 주소지 기준을 유연화하여 상황 기반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형 가구도 행정적 유연성으로 포함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복수 채널을 통해 정책에 대한 접근성 강화해야 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전화, 방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 신청이 가능하게 해야 하며 디지털 약자를 위한 전담 창구를 운영해 기후 취약계층이라면 누구든 복지제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이주민을 포함한 정책 설계를 해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 및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에 대해서도 기후 관련 긴급 지원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용적 기후 취약계층 정책의 방향

기후 취약계층 정책이 진정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실현하려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숫자가 아닌 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정보 수집해 사람 중심 데이터를 구축해야 합니다. 두 번째 기후정책과 사회복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운영해 복지와 환경의 통합 정책을 실현해야 합니다. 세 번째 주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감시와 제안 시스템 구축해 지역사회의 참여를 확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고 발생 후 지원이 아닌, 사고 발생 전 예방 중심 구조 강화하는 예방 중심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을 요구합니다. 기후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정책이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작동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정책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소가 없다는 이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 행정 서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후 위기 속에서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지원 대상자'로 바라보기 이전에 동일한 삶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기후 취약계층 정책은 더 포괄적이어야 하며 제도 밖에 있는 이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그들을 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후 정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